프랑스 자수, 그 오래된 기법이 디지털 세상을 만났을 때, 느린 손끝에서 세상은 다시 태어난다. 실과 바늘로 만들어내는 작은 결들이 차가운 픽셀을 따스한 감성으로 감싸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작가 현정윤은 고전적인 자수 기법을 통해 디지털과 현실을 연결하며, 아날로그 속에서 현대의 흐름을 섬세하게 엮어낸다.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국민대에서 도예를 전공했고, 이후에 독일로 유학을 갔어요. 그곳에서 면접을 봤던 교수님의 조언으로 전공을 공예에서 패션디자인으로 바꾸게 되었죠. 지금은 패션디자인과 8학기에 재학 중입니다. 학업과는 별개로, 니들페인팅을 활용한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 작업은 자수라는 전통적인 기법을 통해 새로운 표현을 탐구하는 것이죠.
-유학을 도예로 가려고 했는데, 교수님의 추천으로 패션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꾼건가요?
네, 패션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는 결정은 쉽지 않았어요. 왜 패션디자인을 하라고 하셨는지 고민도 많이 했고요. 당시 제가 포트폴리오를 제출할 때, 화방에서 파는 가방을 천과 단추로 리폼하고 자수를 넣어 만들었어요. 교수님이 그걸 보고 가방을 자세히 보시더니, 패션디자인을 전공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결국 많은 대화와 고민 끝에 전공을 바꾸게 되었고, 지금은 독일 할레 국립 미술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며 8학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작품 활동에 대해서 여쭤볼게요.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한국에서는 ‘프랑스 자수’로 통칭되는 서양 자수를 하고 있습니다. 21살 때 취미로 시작한 자수 작업이 적성에 맞아서 계속해왔는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것은 독일에서 코로나가 터졌을 때였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수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후로 약 6년 동안 니들페인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니들페인팅에 어떤 작업인가?
니들페인팅은 바늘과 실을 이용한 ‘페인팅’이지만, 그 자체로 공예의 한 분야라고 생각해요. 자수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실제로는 손재주가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도 어려워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니들페인팅은 굉장히 섬세한 작업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공예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에 담긴 세계관이 궁금합니다.
초반에는 제 취향을 담아 작업을 했어요. 바나나킥 같은 일상적인 것들, 귀여운 원숭이 캐릭터 등을 자수로 표현했죠. 처음에는 순전히 취미로 시작한 작업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디지털 세계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니들페인팅으로 픽셀 게임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과정이 모순적이지만, 동시에 흥미롭기도 해요. 그래서 요즘은 이 방향으로 더 많은 실험을 해보고 싶어요.
-작품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고, 어떻게 표현하고 있나요?
대부분 제 취향에서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여기 보이는 소닉 캐릭터도 제가 계속 사용하는데, 어렸을 때 아빠와 오빠가 자주 하던 게임이 소닉이었거든요. 90년대 게임하면 소닉이 가장 먼저 떠오르죠. 이런 개인적인 추억들이 제 작품에 많이 반영됩니다. 작년에 했던 전시도 이런 요소들이 중심이었고, 미적 취향에서 벗어난 것들을 통해 저만의 아카이브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활동하면서 작품에 영향을 받은 적은 없으신가요?
제 작품은 주로 개인적인 취향에서 나오기 때문에 유럽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았어요. 다만, 독일에서는 제 작업이 독특하게 보이는 이유가 그들이 흔히 접하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이에요. 팝 아트적인 색감과 스타일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독일에서 활동하면서 느끼는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독일은 한국처럼 시끌벅적하지 않아서 작업에 집중할 수 있어요. 특히 제가 사는 작은 도시는 조용한 환경이라 작업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입니다.
-그렇다면 아쉬운 점은 없나요?
아무래도 모국이 아니다 보니 전시나 페어에 참여하기 위한 정보가 부족하고, 네트워크가 없다 보니 적극적인 활동이 어렵습니다.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고, 정보 접근성도 떨어지는 게 아쉽습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 중인데, 니들페인팅이 전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아직은 자수와 연관된 작업을 하지 않았지만, 졸업 학기에는 자수를 중심으로 작업해보고 싶어요. 졸업 작품으로 자수를 활용한 패션 디자인을 시도하고 싶은데, 이를 위해 교수님을 설득할 계획입니다. 제 인스타그램을 통해 교수님이 제 작업을 알고 계셔서, 왜 자수를 중심으로 작업하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잘 설명해야 할 것 같아요.
-졸업 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졸업 후에는 제 작업을 더 깊이 있게 발전시키고 싶어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고, 특히 패션 디자인과 자수를 접목시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계획입니다. 졸업 작품을 기반으로 한 전시도 생각하고 있어요. 또, 독일에서도 제 작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아날로그 자수와 디지털 기술의 결합을 통한 작업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저만의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계속 확장해나가고 싶어요.
-앞으로의 작품 세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앞으로는 디지털 세계, 메타버스를 표현하는 것이 제 작업의 중심이 될 것 같아요. 요즘 AI 작품이 많아지고 있지만, 저는 아날로그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디지털 화면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제 작업의 핵심이에요. 이런 모순이 오히려 작품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다고 느낍니다. 앞으로도 이런 수공예적인 방식으로 디지털 세계를 탐구하는 작업을 계속해나가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에게 작업이란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세요?
작업은 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자수를 통해 감정이나 기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면서 제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또 다른 사람들과 그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방식의 가치를 지키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요. 제 작업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라져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이 되었으면 합니다.
현정윤 작가의 자수는 시간 속에서 잊혀가는 감각들을 실로 엮어내는 작업입니다. 그녀의 바늘 끝에서 천천히 완성되는 작품들은 디지털 세계의 차가움 속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이는 단순한 예술이 아닌,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조용한 회복이자, 느린 아름다움의 재발견입니다. 앞으로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할 이야기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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