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집을 그리는 작가, 윤공주‘
윤공주 작가의 작업은 물리적 공간을 그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녀는 마음의 안식처인 ‘집'(home)을 그리며, 치열한 삶 속에서 돌아갈 수 있는 곳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녀의 작업 철학과 예술적 여정을 함께 탐구해 보았다.
작가는 심상의 안식처가 되는 이상적인 ‘집’을 그리는 예술가다. 그녀의 작품 속 ‘집’은 물리적인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안식처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바쁜 일상 속에서 종종 잊고 지내는 내면의 집을 찾는 여정을 담은 그녀의 그림들은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영감을 준다. 윤작가는 이러한 집의 개념에 언제 처음 몰입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어떤 도전을 겪고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집'(home)은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나의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치열하게 삶을 살다 막다른길에 서게 되면 결국 돌아갈 곳은 ‘집’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집은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곳,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이죠. 그러나 그 ‘집’(home) 또한 어떤 굴레가 되어 그 속에 웅크린 채 살아가기도 합니다.그림에서 ‘집’은 물리적인 집이 아닌 안식처(home)로 상징되어 비현실이 곧 현실인 듯, 내 심상의 이상화된 공간으로 탈출여행을 하며 이 세계의 안식처이자 나 자신으로 존재합니다. 현실에 쫒기 듯 바쁘게 살다보면 자신의 안식처가 되는 이 집을 잊거나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아요. 순간 희미한 기억들이 상기되어 자신의 안식처가 되는 집을 찾아 위안을 얻기 바랍니다.
작가님의 작업에서 ‘집'(home)이 중요한 테마로 등장합니다. 이 집 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언제 처음 이 개념에 몰입하게 되었나요?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 속에 빠져 엉켜있는 현실의생각과, 엉뚱한 상상을 하며 감정을 정리하고 무언가를 해소했던 것 같습니다. 한때 어린이그림책을 그리며 행복함을 느꼈지만, 점점 나의 내면의 구멍이 커지며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나 자신의 저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며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건 그림이었기에 처음부터 다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은 매우 더디고 고단했지만 단단한 홀로서기로 그림 안에서 자유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관념적인 느낌을 시각화하여 그대로 인 듯 아닌 듯 또 그것이 무언가로 확장되어 표현하려 합니다. 구체화된 것에서 해체시켜 다른 모습으로 중첩되고 그로 인해 이중적인 모습과 양가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변주하고자 합니다. 세상에 멈춰있는 것은 없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늘 변화되고 달라지며, 생각은 시간 속에 흐르지 않고 순간 이동하며 자유롭게 어디든 존재합니다. 그림을 통해 멈춰있는 것이 아닌 어디든 존재의 흔적을 찾아가길 바랍니다.
작품 속에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감정의 흐름이 자유롭게 상호 작용하는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이러한 관념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요?
도전이라고 물어보시니 뭔가 거창하게 생각되는데 그냥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입니다. 처음 작은 ‘집’ 하나로 시작해서 이 집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많은 생각들과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마음으로 집을 그렸던 것 같아요. 첫 개인전을 그렇게 지나고 보니 딱딱하게 경직된 집들이 보였고 그건 바로 제자신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툴렀던 제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으니 집들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좀 더 적극적이고 유연해 지자 과감하게 움직이게 됐습니다. 사실, 집이 움직여서 마음을 먹게 된건지, 마음을 먹어 집이 움직인 건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움직이고 있고 심지어 리듬을 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리듬을 보고 큰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많은 분들이 말씀해 주십니다.
전통적인 동양 채색화 기법인 ‘진채’를 사용하신다고 언급하셨습니다. 이 기법이 당신의 작품과 메시지에 어떤 독특한 힘을 더해준다고 생각하나요?
비단위에 ‘진채화’로 그리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진채란 동양화에서 채색 위주의 그림을 말합니다. 진하게 채색하는 그림으로, 천연 안료를 아교에 개어 쌓아 올리는 방식입니다. 비단은 앞과 뒤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저는 비단 뒷면부터 채색이 들어가며 제작과정에서 숨은 레이어가 있고 이는 곧 섬세하게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줍니다. 안료는 천연안료로 분채를 베이스로 하며, 특히 집의 지붕은 석채를 사용합니다. 석채는 입자가 있어 미묘한 입체감이 생겨 그림에 깊이감을 주고, 천연 석채들은 자연이 만들어낸 색으로 따뜻함과 안정감을 줍니다. 화려하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강하지만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림 안에서 색(色)을 많이 쓰다 보니 착시라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분명 같은 색인데 옆에 어떤 색이 있느냐에 따라 그 색은 다른 색으로 보입니다. 우리도 옆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살다보면 때론 나약하고 흔들릴 때가 많지만, 결국 고유한 자기색을 잃지 않고 융화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린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감정적인 같은 인간이며, 인간은 혼자지만 또한 혼자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어두운 블랙(black)이 있습니다. 입자가 매우 고와 모든 빛을 흡수하여 우주처럼 끝없는 블랙(black)입니다. 반짝이는 블랙(black)이 있습니다. 입자가 있어 순간 빛을 반사하여 별처럼 빛나는 블랙(black)입니다. 이름은 같지만 각자 다른 성질의 블랙(black)이 만나 서로 우주의 별이 되게 해줍니다.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닌 자연이 주는 색(色)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나와 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작가로서 내면의 공허함을 채워가며 성장해왔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림이 당신에게 어떤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나요?
그림은 나에게 어떤 ‘틈’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늘구멍만한 크기의 보일듯 말듯한 ‘틈’.
그 ‘틈’은 삶에서 ‘숨’(쉼)과 같아 나를 살아가게 해 줍니다. 잊거나 잃어버리게 되는 어떤 순간들을 알아차리게 해 주고, 수많은 감정에 흔들릴 때 조용히 온전한 나 자신으로 돌아오게 만들어 줍니다. 마음의 구멍을 한번쯤 누군가에게 들켜 위안을 받고 싶다면 제 그림이 그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집’은 한편으로는 안식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속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양가적인 감정을 표현하셨습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된 감정들이 작품 안에서 공존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늘 바쁘셨고 저는 집에서 혼자 잘 놀던 아이였으며 그 시간은 저에게 무한한 상상의 세계였습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진짜 공주가 되기도 했고, 구름 속으로 뛰어들어 내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포근함을 느끼며 꿀잠을 자고, 세상의 모든 동물과 꽃, 나무 등 그들과 소곤소곤 비밀을 나누었습니다. 눈부신 햇살사이로 시원한 바람을 타고 어디든 날아다녔으며, 비오는 날 촉촉한 빗방울이 들려주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 비릿한 흙 내음을 실 컨 마시며 놀았습니다. 사실 이 시간은 무료하고 외롭기도한 시간 이었습니다. 집은 나에게 가장 외로운 공간이면서 ‘이상세계로의 일상탈출’ 공간 이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일상탈출을 꿈꿨던 것 같습니다. 결혼과 함께 아이들의 엄마가 되면서 집은 정신없는 행복으로 가득 채우고 채워지던 어느날, 웅크리고 있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문득, 잊고있던 나의 ‘집’(home)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관계 속에서 끝없는 소통의 부재와 삶에서 오는 굴레들은 모두 집에서 시작합니다.
집은 늘 있었지만 집에 안주하지 못했고, 이상을 꿈꾸며 또다른 집을 찾아 방황을 했지만 ‘삶이란 결국 공허한 집들 속 그림자끼리 만나 우리가 되어 서로 기대며 사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림 속에서 집은 같이 움직이고 때론 한 발짝 떨어져 독립적이며 결국 다시 만나 리듬을 타고 서로를 통해 행복을 공명하고 싶은 마음을 담게 됐습니다.
작품에 담긴 빛과 색, 그리고 움직임(율동) 의 상징은 강렬한 에너지와 자유를 느끼게 합니다. 이런 요소들이 당신의 작업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앞으로의 작품에서 어떻게 확장될 예정인가요?
세상 모든 것은 다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동(파동, 에너지)하고 있습니다. 집들은 진동(에너지)하며 춤(율동)을 추고, 어우러지며 빛을 흡수하고 반사합니다. 자기만의 고유한 리듬은 이상적인 삶이자 자기완성으로 집들의 움직임 즉, 율동과 색(色)으로 표현 하였습니다. 집은 작게는 한명의 개인이기도 하고 가족이 되기도 하며, 나아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삶에서 중요 한 건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 자신과 소통이 잘 되었을 때 타인과의 많은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풀렸습니다. 연필로 꾹꾹 눌러써서 지우개로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자국처럼, 상처들을 타인의 시선으로 스스로 객관화 하여 마주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온전한 자신을 느끼기 위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상대를 통해 즉,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이 온전한 나를 선명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림 속 작은 종이배들은 나 자신 즉, 자아(自我)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무한한 시간 속에 유한한 삶을 살아가기에 그때그때 나의 모습은 다 다르며, 현재의 나도 누구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변화에 적응하며 도태되지 않기 위해 많은 가면을 쓴 체, 끝없는 불안을 안고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며 현실의 자아와 안식처가 있는 이상세계를 갈구하는 자아의 양가적인 감정이 중첩되어 시간 속 다양한 나를 표현하였습니다. 그림은 나에게 커다란 문과 창이 되어 이쪽과 저쪽의 경계이자 소통의 통로가 됩니다. 안에서 밖을 볼 수 있고 밖에서 안을 볼 수 있는 유기적인 연결성과 자유로움을 나타내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집, 도시)을 확대, 해체, 관망 하듯 상상력을 높여 추상적 표현으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작업에서 꿈꾸는 자유로운 표현의 방향성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새로운 매체나 기법을 시도할 계획도 있으신가요?
현재 비단과 천연안료가 주는 자연의 따뜻한 색에 매료되어 집들의 리듬과 색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리듬들을 생각하며 유연하게 움직이길 원하고, 캔버스라는 틀 안에서의 한계를 넘어 또 다른 감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 봅니다. (실현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때 현실적인 어려움이 항상 따르다 보니 주저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는데 저에게 용기와 부지런함이 필요한 것 같네요.)
질감의 다양함으로 시각적인 입체감과 그 속에 숨은 감정을 만나수 있게 재료와 기법에 대해 늘 생각하고 실험해 봅니다. 조금씩 변화된 작품들을 시도하여 선보이고 있으니 미묘하게 다른 표현들과 변화되는 과정들을 눈여겨 봐주시길 바랍니다.
윤공주작가의 작품은 ‘집’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치유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그녀는 그림이 자신의 삶에 틈을 만들어 주었고, 그 틈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앞으로도 그녀는 비단과 천연 안료를 사용한 진채 기법을 통해 더욱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이다. 윤작가의 작품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삶의 순간들 속에서 자신의 안식처를 찾아 위안을 얻고, 그 안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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